“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자살 안내자(helper)라는,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직업을 가진 화자는 위와 같이 말한다. 인간이 신이 되기 위해서는 창작을 하거나 살인을 하는 길밖에 없다고. 신문에 “고민을 들어드립니다”라는 광고를 내고 주로 깊은 밤에 걸려오는 사람들의 깊은 한숨 섞인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그들 안에 있는 자기 파괴 욕구를 발견하게 되면 그들이 자살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자살 안내자라는 직업. 소설이 발표되었을 당시의 96년도에는 이 설정 자체가 무척 충격적이었을 것이지만 근래에 문제가 되었던 자살 사이트 등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기도 하다. 작가가 시대를 몇 년 앞서 본 것일까. 나를 파괴한다는 것의 정점인 자살, 김영하는 이 소설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소설 속의 인물들을 통해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의 대대적인 자살 사이트 단속과 폐쇄 조치, 마약 사범의 엄중 단속 등의 예를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라는 체제에서는 나를 파괴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 같지 않다. 왜 작가는 나를 파괴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왜 국가는 그것을 막아야 하는가?
다시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이라는 문장에서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신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며 그에 비해 인간은 주어진 운명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내가 태어나길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태어나서도 좀처럼 나의 생각대로 살 수 없으며 죽는 순간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창작의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창작물을 형성하는 과정에 대해 완전한 결정권을 가진다. 물론 사후 심의 등이 있기는 하지만 글을 집필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할 때, 일련의 창작 과정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이 때 인간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신의 위치에 서게 된다. 자살은 이보다 더 확실하게 인간이 신이 되는 방법이다. 신의 영역에 속한 생명의 탄생과 끊음에 대해 탄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생명을 끊을 수 있는 권리를 신으로부터 탈취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 속에서의 유디트(세연)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을 앞두고 있는 그녀는 이 때까지 되는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오다가 생전 처음 자신의 삶을 자신이 계획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그것이 너무 신난다는 말을 한다. 그녀는 흐름에 종속되어 있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말지으려는 자기 파괴의 결정을 내림으로서 그녀 자신의 그녀의 삶을 결정하고 지배하는 신의 위치에 선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왜 이러한 자기 파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가? 사실 자살이나 마약 투여 그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병균 등을 옮기는 것도 아니다(물론 마약 투여 후 환각 상태에서의 범죄 행위 같은 것은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되고 감추어지며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공론의 장으로 나오지 못한다. 일일이 자살을 통제할 수 없지만 드러난 자살 시도는 위기 상황이 되며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대상이 된다. 마약도 마찬가지이다.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퇴치해야 할 대상이다. 마약을 통한 새로운 세계, 즉 환각의 세계는 위험한 것이다. 체제 안에서의 무미건조함과 무기력함, 이를 종결짓거나 환상으로나마 가능한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는 것은 체제에 대한 도전이며 이탈의 시도이다. 따라서 국가 체제는 이를 강하게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이는 체제에 대한 반발이요, 저항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태일의 분신 자살 같은 것만을 저항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소설 안에서 유디트와 미미는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세상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고 따라서 이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자신들의 존재를 스스로 소멸시킴으로서 그들의 삶 안에서 신의 위치에 서게 된다. “체제가 재미없다”, 또는 “이 체제 안에서 사는 것에 지쳤다”라는 것은 국가 체계를 구성하는 성원이 그 체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더 이상 그 체계를 구성하는 일원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체계를 이탈하려고 한다는 점, 또는 환각에서나마 다른 체계에서 산다는 점에서 체계에 대한 위협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도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 등 북유럽의 국가에서 일정 장소를 건립하여 마약을 나누어주는 경우는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오히려 국가가 개인이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제한적으로나마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현상을 점점 개인의 자유권의 개념이 자기 파괴의 범위까지 확대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시각이 현상의 일부만을 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국가가 직접 마약을 나누어주는 현상은 마약이 이미 너무 널리 퍼져 있어서 일일이 단속을 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직접 거래하는 것만 단속하고 피우는 것까지는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차라리 마약을 제공하고 센터를 만들어서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등 제한적으로 양성화시켜서 오히려 더 확실히 관리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국가가 이들을 확실히 체계 안에서 수용하려는 것이지, 자기 파괴의 자유를 완전히 인정하는 것으로 보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국가가 이들을 대할 때 ‘처벌’을 우선시했던 반면 이제 스위스나 네덜란드 같은 국가에서 이들은 체계가 ‘관리’해야 하고 ‘치료’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일본의 가미가제나 팔레스타인 지역의 자살 특공대의 경우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물론 이것도 자기 파괴 행위의 일종이다. 그러나 이는 소설 속 미미와 유디트의 행위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미미와 유디트가 일상, 더 넓게 보면 체계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소멸시켰다면 가미가제와 자살 특공대는 체계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치고 그렇게 함으로써 체계에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 시킨다. Durkheim식으로 말하자면, 미미와 유디트는 체계에 자신들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체계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제거시키는 이기적 자살을 한 것이고 가미가제와 팔레스타인의 자살 특공대는 체계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는 이타적 자살의 전형이다. 후자의 경우는 사회와 자신이 지나치게 일치되어 있는 경우에 일어나는 자살로서 이들은 자기를 파괴함으로서 사회에 제 존재를 흡수시킨다. 이러한 예로 진중권의 글에서는 전태일과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을 예로 들며, 그것이 똑같이 자기 파괴의 행위였지만 그러한 행위와 사회와의 관계를 볼 때, 전태일의 자살은 사회에서 자기의 존재를 소멸시킴으로서 국가가 압수한 개인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자아회복’의 행위로, 반면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은 국가에 자신을 동일시하여 개인이 자신을 지워 국가에 편입하는 ‘자아소멸’의 행위로 이해했다. 체계를 벗어나려 하는 자기 파괴와 체계를 위한 자기 파괴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을 종합하면 자살과 마약과 같은 자기 파괴의 행위가 행위 그 자체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체계에 미치는 영향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체계를 위한 자기 파괴 행위는 적어지고 체계에서 벗어나기 원하는 자기 파괴 행위가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국가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지금도 국가는 이러한 행위를 사회 문제화 시켜 대책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책보다는 이탈의 움직임이 더 빠른 듯 보인다. 그러나 체계도 이러한 자기 파괴를 막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생각과 달리 국가는 체계 자체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체계 유지에 위협이 되는 자기 파괴 행위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의 범위는 점차 넓어지는 것 같이 보여도 오히려 그 안에 교묘히 체계가 들어와 더 정교하게 우리를 옥죄어 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는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방편일 것이다. 작가도 그것을 알았을까, 벗어나려 해도 계속 집요하게 침입하는 체계의 굴레를. 소설 끝에서 자살 안내자는 이렇게 독백한다. “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by 나다 |
2004-07-2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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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9 01:43 2004/07/2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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