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소라는 직장이 좋은 점 중 하나는 연구를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타당한 이유를 내세워 회사 돈으로 컨퍼런스나 학회를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는 전자신문사와 검색엔진마스터가 공동 주최하는 Search Day 2008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오늘까지 행사가 있지만, 오늘의 주제가 주로 개발자와 마케팅 전략에 초점을 두는고로 양심껏 검색의 현황과 철학 등에 집중한 첫날 컨퍼런스만 참석했다.
행사 규모도 크고 네이버, 다음 등이 붙어있는 스폰서 업체도 빵빵하고 강연진 목록도 화려하더라. 그러나 강연진 목록에 속으면 아니 된다는 걸 느낀 게 어디 한 두번이랴. 특히 매우 구체적인 수준의 기술을 다루지 않고 전반적인 웹 문화를 다루는 다수의 컨퍼런스에서 발표자의 성실성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웹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레퍼런스는 과거의 것임을 안다. 학술 논문 쓰듯이 엄격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레퍼런스를 달아달라고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비싼 강연료 받고 오신 분들, 최소한 강연료에 걸맞는 준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의 직함이 증명할 뻔 했던 당신의 전문성이 준비되지 않은 강연으로 인해 기실 직함과 전문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관계인가를 보여주며 톡 허물어져버리는 순간을 맞는 건, 귀한 시간과 공공 자금을 동원해서 그 자리에 앉은 나로서도 허무하고 불쾌한 일이다. 제발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지 생각 좀 하고 오시라. 되는대로 씨부리지 말고. (이건 함께 어제 컨퍼런스 참석했던 모 박사님 표현이다. 내 혀는 청순하다^^;)
2.
이번 해 내가 참여한 과제가 포털 사이트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것이라 포털이 검색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가 매우 궁금했다. 정보 획득의 수단이라는 거창한 수식이 민망할 정도로 검색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검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메이저 포털의 정책과 비전이 알고 싶었다. 특히 사용자가 만들어낸 콘텐츠들을 단지 사용자가 자사의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정보를 전용하고 있는 포털의 폐쇄성에 대한 비판이 높은 상태에서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할 것인지 궁금했다. 최소한 성의있는 변명이라도 기대했었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 관계자들의 발표는 좌절스러웠다. 기조 연설을 맡은 네이버 센터장의 발표부터가 이게 대한민국 검색 서비스의 발전 방향인지, 네이버 사내 방송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지식검색과 검색의 미래"라는 제목을 가지고 네이버 실장이 발표한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지식검색에 대해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던 문제들, 즉 답변 내용에 대한 검증 부재 및 빈약한 콘텐츠의 문제 등은 짚지도 않은 채 지식검색이 네이버 검색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 통계적인 측면만 주로 다루고 넘어갔다. 좋다. 제대로 된 통계라도 보여주는 게 일종의 성실함이기도 하니 여기까진 그렇다 치자.
그러나 현재의 네이버 검색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들을 죄다 사용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무슨 경우인가. 사용자는 짧은 쿼리만 입력하며 글자를 치기 싫어하고, 화면 상단만 주로 보는 게으른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해서 현재의 문제가 가려지나? 우선 쿼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건 비단 한국의 웹 검색 사용자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보편적인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가 지명이나 이름 등 아주 작은 정보에서 시작하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사용자가 게을러서 글자조차 안 치더라는 자신의 주장을 타당하게 증명하려면 다른 나라의 검색 이용자들이 입력하는 글자수를 비교하여 제시하는 게 옳다. 또한 대학원에서의 다양한 노가다 훈련을 연구원이라는 직장에서까지 이어오고 있는 본인은 다양한 검색 방법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고, 보통의 수준 이상으로 검색을 활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단어 몇 개 이상 넘어가면 우리의 1등 검색 업체 네이버 씨, 연관성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결과를 내놓는다. 굳이 구글을 갖다 붙일 것도 없이, 차라리 엠파스 등을 활용하는 게 훨씬 검색 퀄리티가 양호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사용자가 게으르고, 사용자가 만들어 내는 콘텐츠가 빈약하기 때문이라 변명할 수 있나? 사용자의 욕구에 따라 서비스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어느 부분 타당하다. 그러나 서비스의 수준이 사용자의 요구를 창출하기도 한다. 2어절 이하의 단문 정도만 제대로 검색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사용자는 그 서비스에 대해 그 이상의 수준을 기대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결국 서비스는 정체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게을러서 화면 상단만 본다고 불평한다. 60%이상은 1페이지 안에서만 결과를 본다고 하더라. 왜 그럴까? 그 이상 페이지를 넘겨봤자 중복 문서만 계속 나오는데 어느 바보가 그걸 계속 뒤지고 있냐? 그리고 화면 상단만 사용자가 본다는 것을 자신들이 통계적으로 입증했다면, 그 상단에 사용자의 쿼리와 가장 연관성이 높은 결과를 제시해야 할 텐데, 모든 검색 결과의 제시는 스폰서 링크-> 파워 링크-> 플러스 프로 등의 광고성 사이트가 주욱 뜨고 나서야 지식인, 카페, 블로그 등의 네이버 내부 자료를 제시하고 그 뒤에서야 기타 웹 페이지나 뉴스가 제공된다. 사실 연관성이 더 높은 것은 네이버 외 기타 웹페이지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이게 어디 네이버 뿐이겠는가. 현재 한국의 포털이 이용자 편의에 맞춘 검색을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과연 실천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3.
그래도 포털의 불평 중 한 가지 공감하는 것은 한국의 문화가 무엇을 생성하고 공유하는 경험을 가지기에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내가 아는 것을 남에게 공유한다는 건 일종의 재화 손실로 여겨지기 십상이며, 무엇인가를 여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음악, 움직임 등 거의 모든 창작의 경험이 학교 성적 및 진학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창작이 주는 그 자체의 즐거움을 경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사상과 문화를 빈약하게 만드는지 이미 경험하고 있으니까. 사고를 기르는 시간을 주지도 않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고를 요구하지도 않는, 때로는 사고를 박탈하는 이러한 환경에서 목적을 적당히 달성할만한 단편적 정보만을 요구하고 쫓아다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앞에서와 똑같은 이야기. 과연 현재 한국 포털의 검색 정책을 문화 탓만 할 수 있는가? 환경이 기술을 만들기도 하지만 기술이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즉, 사용자가 공유하는 문화가 기술을 지금의 모양으로 형성하기도 하지만 사용자의 기술적 경험이 사고와 문화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와 동영상 UCC 서비스 등이 일부 사람들이나마 스스로 이미지, 영상, 음악 등을 만들고 공유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것을 가능케 한 것처럼, 검색을 통해 내 정보가 필요한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고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 이러한 점에서 주로 오후 세션의 검색 엔진 전문 개발자들이 언급했던 "사용자의 검색 경험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지적 재산권에 대해 백만 번 외치는 것보다, 검색에 대한 좋은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지식의 소중함과 가치를 체감하는데 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웹을 웹답게 이용케 하는데 더 적절한 방법이기도 할 것이고.
Search results
'종종 공부도 하자'에 해당하는 글들
- 2008/04/25 Search Day 2008 첫날 후기
- 2007/03/06 확정 1 (6)
- 2007/02/28 GRE 시험 등록 (4)
- 2007/02/01 계획 1 (4)
- 2006/07/26 1차 코딩- 하루치 코딩 과정 및 총평 (2)
- 2006/01/14 문화산업- 수요와 소비
- 2005/11/18 Resource Partitioning, the Founding of Specialist Firms, and Innovation
- 2005/11/12 Cultural Entrepreneurship in Nineteenth-Century Boston
- 2005/08/19 논문 주제에 대한 중간 보고
- 2005/08/10 필독(이 글은 8월 10일까지 맨 처음 글로 올려놓겠습니다)
1. GRE 시험일을 6월 10일 도쿄 => 7월 23일 오사카로 변경했다.
수수료 40달러..... 한 달 동안 4만원어치만 덜 먹자. -_-;
2. 6월에 한국에서 PBT를 한 번 보고 오사카에 갈까 생각했으나 라이팅 때문에 무리일 듯.
역시 인생은 한 방이다. 한 번에 끝내버리도록 하자.
3. 바뀌기 전에 GRE를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다가 잠시 토플을 망각하고 있었다.
스피킹과 리스닝의 압박- 뭐 그렇다고 해서 리딩이 된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은 어찌할 것인가!!!!
얘를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생각 좀 해 봐야겠다.
4. 고기는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데, 단어는 외워본 놈이 더 잘 외울까?ㅡㅜ
난 중고등학교 때도 영어 단어 시험 볼 때는 그냥 대충 찍거나 알아서 뒤로 나가서 벌을 섰다.
영어 과외로 밥먹고 살았다고 하기에도 쪽팔리게 단어 수준이 바닥이고, 아티클이나 책도 그냥 감으로 읽어왔다.
그런 애가 GRE단어를 외우려고 한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ㅠㅠ
5. 단어를 보는 행위에 적응하는 것만 일주일 걸릴 듯. 이 인간은 변명도 많아.
2월 한 달 이래저래 휘릭휘릭 지내고 났더니 6,7월에 일본에서 cbt gre등록하는 건 거의 전쟁 수준이었더라.
상황판단 못 하고 밍기적거리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간신히 6월 10일 도쿄 시험 등록.
8월에는 시험이 없고 7월에 딱 한 번 보는 걸로 끝내고 싶었지만,
7월 날짜 열린 건 부지런한 이들이 다 차지했고 더 열어줄지 말지는 ets맘이니까 그나마 열려있는 것으로 잡았다.
계속 새로고침 눌러가면서 7월 시험 열리면 날짜를 변경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나, 안 되면 이제 남은 건 단 세 달.
시험 날짜 변경하려면 40달러를 더 내야 한다....orz
까짓꺼 세 달 바짝 달리고 6월에 도쿄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들고 있는데,
그러기에는 내 영어가 너무 짧다는 게 문제........orz
그러나 나같은 인간은 원래 닥쳐야 하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또 스물스물 들고....
뭐 어떻게든 하게 되겠지...라고 맘 편히 생각하고 있다.
날짜 변경 안 되면 6월 gre, 8-9월 토플을 보기로 결정.
토플도 등록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하던데,
내 돈 주고, 게다가 다른 나라로 원정까지 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다.
이렇게 유학 준비의 길로 한 발 갔다. 어렵구나 어려워.
정보는 흘러넘치고 자료는 쏟아진다. 무엇부터 보야야 할지부터 감을 못 잡고 헤롱헤롱하다가 우선 한지 5.5ver.을붙들고 단어부터 외워야겠다는 결론을 내리다. 출력하기 귀찮고 한두장도 아닌 분량을 출력하려면 눈치 보이니까 복사집에 전화해서 주문하고 택배를 받아야겠다.
2. 말로네가 추천해주는 학원은 시간이 영 안 맞는다. 그런데 이건 대개의 학원이 마찬가지. 나는 썩 신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GRE보다는 예수님이 내 생활에서 더 중요하니 교회 안 가고 학원을 갈 수도 없는 일이다. 어렵다 어려워. 요즘 이 바닥에서 유명하시다는 강사의 스케쥴을 보니, 2개월 과정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과 내가 계획한 사이클이 어긋나 있었던 것 같다고 짐작, 결국 학원은 3월부터 다니기로 마음 먹었다. 주말은 시간도 안 맞을 뿐더러 공부는 어차피 꾸준히 해야 하니까 피곤하더라도 저녁반을 다녀야겠다.
3. 이렇게 마음이 급해져 버린 건 GRE시험이 9월부터 바뀐다는 소식 때문. 즉, 더 어려워진다는 이야기 되겠다. GRE먼저 해 놓으면 적어도 ibt볼 때 단어 걱정은 좀 덜 해도 되겠지. 이렇게 준비한다고 해도 6월 시험은 어려울 것 같아서 현실적으로 7월과 8월에 일본에서 시험을 보기로 했다. 한 번 갈 때 50~60만원 정도 든다니까 7월에 승부를 내야 돈도 굳는다. 한 번도 독하게 공부해 본 일이 없지만, 열심히 하자.
4. 급하게 준비해야겠다 생각한 진짜 이유. 그저께 창립 기념일이라서 실컷 쉬었더니 어제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만사가 귀찮았다.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고 귀찮은 상태에서 멍하니 누워 있는데, 이러다가는 아무 것도 못하고 대충 흘러가는대로 살겠구나 싶어서 겁이 덜컥 났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 되는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내 게으름때문에 그냥 시간을 흘러보내다가 불평만 하고 있는 모습이 서른 살의 나라면, 그건 정말 아니니까.
5. 그런데 토플은 어쩌나........-_-;;;; (영어 바보임)
논문의 소재가 되는 모 사이트 포럼의 하루치 글 코딩을 마쳤다.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열혈 직장인 모드로 하루에 다 끝냈을 것 같은데, 타고난 늘보인 나는 장장 닷새는 걸린 듯. 그래도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조상님 말씀을 핑계삼아 스스로를 격려하고 있는 중이다. 난 게으르고 변명에 능한 스스로를 사랑하지만, 당분간은 직장인 모드 해야겠다ㅡㅜ
500개의 글과 거기에 딸린 리플들을 분석한 끝에 얻은 것들.
1. 내용분석의 초기 원칙을 잊지 말자. "분석 대상이 되는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여 그 누가 코딩을 한다 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함"이 내용분석의 근본이다. 이 원칙으로 비추어본다면, 내가 작업한 결과는-오지게 고생은 했다만- 객관적으로 형편없다. 석사 연구 가지고 노벨상 탈 생각은 아니지만, 적어도 분명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 오늘의 자료는 연구에서 제외되어야 하겠다. (엉엉, 진짜 엉엉~~~)
2. 그래도 하루치를 한꺼번에 코딩하고 나니까 기존 코딩 항목의 문제점이 보인다는 것이 그나마 희망적. 생각치 못한 것들이 툭툭 튀어나오면서 분석틀이 흔들리다보니 1에서의 실패가 나타난 것. 회원들 간 정보 제공이나 도움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항목 구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건 프로포절 발표할 때 샛별 선생님이 지적하신 내용이잖아-_- 이래서 선생님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하는게지ㅡㅜ
3. 포럼을 먼저 분석하고 각 포럼내 소모임을 후에 분석할 예정이었지만, 오늘과 같은 실수를 하고 보니 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소모임 글들의 내용분석에서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튀어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고 봐야겠지. 내일은 소모임의 글을 하루치 분석하고 코딩 분석틀을 다시 확립한 다음 본격적 분석에 돌입해야겠다.
그래도 간만에 집중력- 남들이 보기에는 초딩 수준일지라도- 을 발휘한 스스로를 토닥토닥. 잘했어요, 나다씨 :D
내가 이런 글을 읽었던 적이 있었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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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와 소비Ⅰ
이번 주의 읽을거리에서는 문화산업시장의 수요와 소비가 구성되는 방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두 글이 가정하고 있는 가정이나 동원하고 있는 설명 방식은 다르지만 이들 모두 지적하고 있는 점은 “당신의 취향, 당신의 소비가 과연 당신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마도 아닐걸요”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Caves의 글은 기존의 경제학이 수요와 소비에 대해 사회적인 요소들과 맥락들을 간과하여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문화 예술 산업에서의 취향과 소비에 대해 논하는 것을 단지 시간낭비로 만들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작된다. 취향과 그로 인한 수요, 그리고 소비는 결코 사회적 진공상태에 있지 않다는 점, 특히 문화예술시장에서의 수요와 소비는 더욱 그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것의 예가 될 만한 예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글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 자신의 본업이 본업인지라, 이 글이 전제하고 있는 기본 가정들은 다분히 경제학적이다. 문화예술시장은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이 만나서 균형을 이루는 곳이며, 행위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최대의 효용을 얻으려고 한다. 그런데 문화예술시장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Nobody knows", 즉 고도의 불확실성 때문에 소비자나 공급자 모두 합리성을 제한받을 수밖에 없고 그들의 투자에 대한 비교적 큰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산업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소비자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 보면 그들은 문화예술상품에 대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이는 문화예술상품에 대한 비용이 된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비용에 대해 최대한의 효용을 얻으려 하지만 문화예술상품이 가진 경험재 experience goods적 특성 때문에 그것을 소비해보기 전까지는 자신에게 주는 효용을 감지해낼 수 없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불확실성에 대처하여 최대한의 효용을 얻기 위한 전략―용어와 설명의 흐름이 지나치게 도구적이다. Caves가 이렇게까지 도구적이었는지, 아니면 메모를 쓰고 있는 본인의 이해방식이 지나치게 도구적인지, 혹은 둘 다인지 모르겠다―을 이용하게 되는데 그러한 전략 중에는 제 3자적 입장에 있는 비평가 및 보증인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타인의 소비활동을 관찰하고 그를 통해 정보를 얻는 등이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시장에서의 소비는 결코 개인에게만 귀속되는 행위가 아닌, 사회적 요소와 맥락에서 오는 정보와 소비자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 (==> 경제학이 원래 도구주의적입니다.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를 찾는 학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생산자들 또한 불확실성에 대응하면서 수요를 잡아내려는 노력을 보인다. 앞서 지적하였다시피 Caves는 문화 예술 산업도 시장경제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형성되고, 혁신 또한 이 맥락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문화 예술 산업에서의 혁신은 물론 단순히 기술적인 진보만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수요의 이동을 적절히 잡아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일반 산업에서의 혁신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수요의 이동을 잡아내는 것이 다른 산업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어렵다는 것이고, 이는 이들의 환경을 매우 불확실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의는 “선(先) 수요 후(後) 혁신”을 가정하고 전개되어 온 것 같다(==> 매우 좋은 지적입니다. 수요 혹은 선호나 취향은 태초부터 안정되게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경제학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경제학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안정된 선호를 창조하셨느니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이 창조하신 것을 감히 설명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문화 예술 산업에서 이와 같은 가정이 타당할까? 오히려 문화예술상품은 수요를 잡아낸 결과로 탄생하기보다는 그 자신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경우도 많다.(==> 좋은 지적입니다) 이러한 경우, 혁신은 단지 수요에 발맞추어 조직의 생존을 도모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 자체가 살아남기 위한 가장 적극적이고도 위험한 도구로 작용한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혁신을 정당화, 혹은 홍보하기 위한 다양한 후속 전략 등의 모색 (==> 의미가 불분명합니다) 등이 수요․소비와 관련하여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 그래도 Caves는 사회학의 연구결과 일부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맥락 - 대화나 교제에서의 유용성 - 을 고려하고 있지요.)
Bourdieu의 글 또한 취향과 소비가 구성된 것임을 보이지만 근저의 가정들은 Caves와 상이한 점이 발견된다. 가장 큰 차이는 문화예술상품의 소비에 투자되는 자본의 성격에 있다. Caves가 주로 경제자본과 시간을 문화예술상품에 투자되는 자본으로 보았다면 Bourdieu는 자본의 형태를 보다 섬세하게 구분한다. 바로 현금화되어 사용되는 경제자본의 중요성을 그가 절대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경제자본이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의 바탕이 되는 점들을 절대 간과하지 않았다―Caves의 논의와 비교하여 볼 때, Bourdieu가 제시하고 있는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의 개념은 수요와 소비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는 문화자본을 체화된 형태, 대상화된 형태, 제도화된 형태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보고 있다. 체화된 형태의 문화자본은 한 개인의 몸에 자연스레 배어있는 것으로서 교육 등에 의한 의식적인 것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취득된 자본이라 볼 수 있다. 이는 학위 등으로 제도화된 문화자본에 의해 정당성을 획득하고, 그것을 통한 금전적인 가치를 보장받음으로서 경제적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게 된다. 또한 체화된 문화자본은 객관화된 문화자본, 즉 글이나 그림, 음악 등 물질적인 대상이나 매체에 의해 대상화된 문화자본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그림을 가지고 있다”와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다른 문제이고 후자는 단지 경제적인 투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 논의의 핵심을 매우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 텍스트 이해를 너무도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정당한 욕심을 더 내자면, 이런 특성이 소비나 수요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보다 명료한 논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문화 자본의 세 형태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본은 문화예술상품의 수요와 소비와 관련하여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사회자본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이해하면 네트워크의 소유와 관련된 실제적이고 잠재적인 자원들의 집합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개인이 가지는 네트워크의 크기는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여러 곳에서, 그리고 (네트워크의 이질성 정도에 따라) 다양한 수준에서 올 수 있다는 점과 관계된다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Caves의 글에서 소비자들이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세우는 다양한 전략 중 다른 이들의 소비형태를 관찰하고 입소문을 이용하는 것과 연관하여 볼 수 있다(==> 좋은 지적입니다. 사회적 자본이 문화 자본과 결합하여 소비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까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는 정보 흐름의 통로로서 이용될 수 있으며 이는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정보 수집에서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자본 또한 불확실성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체화된 문화자본의 형태가 매우 공고하고 각각의 문화자본과 계층이 매우 잘 상응한다면 취향과 그로 인한 수요와 소비의 틀은 생산자에게나 소비자에게나 보다 안정된 것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 불확실성과 연관시킨 점 매우 좋습니다. 문화자본이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부분은 흥미로운데 좀 더 논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불확실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그래서 불확실성과 관련된 논의가 사람들에게 설득력도 크기 때문에 이 점을 잘 살려도 좋겠습니다.)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불확실성의 극복 문제는 종종 도구주의적 관점과 연관됩니다. 취향이나 가치는 고정적으로 존재하는데 이런 것이 충분히 실현되는 것을 정보의 부족이 가로막고 있으므로 이런 문제를 없애주면 원래부터 존재하는 취향이나 가치가 충분히 실현된다는 관점입니다. 여기서는 취향이나 소비의 원동력이나 소비의 유형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핵심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경제사회학의 상당 부분이 도구주의적 관점을 가져오고 있어서 장점이지 동시에 단점이 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런데서 벗어나 취향 자체를 설명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면, 사회자본이 수요나 취향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점은 없을까요?)
지금 한국에서는 문화의 수직적, 수평적 분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르의 세분화와 각각의 그것에 대한 지각 수준이 높아진다는 점에서는 수평적 분화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음과 동시에 체화된 문화자본 또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관찰입니다. 어떤 현상에서 이런 점이 보이는가요?). 이는 경제적 풍요와 함께 보다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된 부모 세대의 존재와 문화자본의 대물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역사가 격변 그 자체인 한국 사회에서 프랑스와 같이 안정된 취향과 계급의 위계구조를 명확히 잡아내는 것은 아직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경제적 풍요가 가져다 준 여유, 그리고 그를 통한 문화의 향유가 세대 간 대물림되면서 계층을 구분 짓는 현상이 조만간 한국에서 관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 (==> 매우 좋은 연구주제입니다.)
* 수고했습니다.
* 각 논문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특징을 소개하고 비교, 분석을 잘 했습니다. 분량 제한을 없앴으니 그런 것에 구애받지 말고 하고 싶은 만큼 하기 바랍니다. 분량이 이보다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았을 텐데 하다 만 느낌입니다.
* 항목별로 정리해서 비교, 분석하면 좋겠습니다. 장절 구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여러 학자들이나 연구내용을 서로 비교하거나 분석할 때, 나름대로의 이론적 틀을 구축, 구성하는 기분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 우리는 다음 주까지 동일한 주제를 다루므로, 두 주를 합쳐서 보다 포괄적인 분석을 해도 좋겠습니다. 기대됩니다.
John M. Mezias and Stephen J. Mezias
기본가정
이 글은 초기 Hollywood 장편영화산업의 출현과 발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연구를 진행한다. 이들이 장편영화산업을 통해 문화 조직에서 중요하게 전제하고 있는 점은 ①생산품의 혁신, ②다양한 관객층에 대한 봉사라는 두 가지 측면인데, 이 두 항목들은 관객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가장 궁극적으로는 조직의 생존과 연관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조직의 크기size와 형식화formalization, 복잡성complexity은 혁신이라는 측면에 있어 일종의 장애물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보다 작고 덜 구조화된, 상대적으로 전문화된 조직의 존재와 vitality는 산업이 계속 발전,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혁신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할 수 있다. 특히 이는 문화산업에서 더욱 그러하며, 만약 이에 실패할 경우 예술적 질과 문화상품의 다양성이 둘 다 저하될 수 있고 이는 조직의 생존에 매우 위험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위험성은 몇몇 거대 기업들이 시장 통제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더 클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글에서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 매우 좋습니다. 치열한 경쟁의 존재와 규모의 경제도 중요한 전제입니다. generalist 와 specialist의 비교우위를 다르게 만드는 변수들로 다른 것들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 자원
본 논문에서 저자들은 자원분배모델resource-partitioning model(==> 자원분할이라고 번역합니다)을 사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자원분배모델은 대형 종합 조직들은 비슷한 자원을 두고 서로 중심(==> niche의 중심이지요. 가장 보편적인 시장영역일 수 있습니다) 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며 이러한 경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이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주변적 자원들이 전략적으로 전문화된 조직에 의해 개척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 간 집중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그들 사이의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환경은 다른 자원을 활용하는 전문조직에게 더 유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조직의 생태학적 측면과 관련하여 이전 조직연구들이 발견하였던 요소들 또한 고려되고 있다. 조직의 밀도와 density squared, mass, 경제적 영향력(논문에서는 GNP성장을 통해 측정), 이전기간의 조직 설립이 다음기간의 조직설립에 미치는 영향력 등이 고려되었다. 이는 산업을 구성하는 각 조직들 간 경쟁, 조직설립에 끼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중요하다(p. 312~313참고).
질문 및 그에 대한 가설
영화산업에서 위와 같은 가정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최근, 더 작고 전문화된 제작사와 배급사가 양질의 영화를 제작, 배급하는 경우가 점점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들은 발견한다. 여기에서의 high quality라는 것은 단지 영화의 완성도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새롭고 다른, 즉 혁신의 측면까지를 포함한다. 이러한 전문제작사와 배급사는 20세기 초에 등장하여 몇몇 지배적 기업들과 함께 존재해왔다.
자자들은 1912년부터 1929년에 걸친 기간에 초기 Hollywood 장편영화산업이 등장, 발전하면서 직면하게 되는 두 가지 도전, 즉 ①장편영화의 수요를 감당해낼 수 있을만한 조직적 하부구조의 구축, 그리고 ②장편영화의 등장으로 일반화된 긴 상영시간과 낮은 회전율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배급 조직의 필요성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서로 다른 형태의 조직 구조가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 종합기업generalist firm형태는 제작과 배급에 모두 관여하며,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반면 전문기업specialist firm의 경우 제작과 배급 둘 중 하나에만 관여한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관찰과 이전의 연구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것을 질문한다. ①종합기업들 간 집중화의 정도가 전문화된 기업의 설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②과연 전문화된 기업들이 종합기업보다 더 혁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저자는 자원분배모델 및 이전의 조직연구에서 다루어진 부분들을 바탕으로 종합기업들 간 집중화의 정도가 커지는 것이 전문기업의 설립과 양의 관계를 가진다고 가정한다. 또한 저자들은 혁신을 오늘날의 도구들, 즉 수상이나 비평적 찬사, 박스 오피스의 성적 등으로 판단하기에는 측정이 불가능하거나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장르에의 참여를 통해 혁신을 측정하려고 하며, 전문기업들이 새 장르를 창조하는 것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논문의 타당성
본 연구는 조직의 크기size와 형식화formalization, 복잡성complexity이 혁신에 있어 일종의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기존 조직사회학에서의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종합기업의 집중화가 전문기업의 설립에 끼치는 영향과 함께 과연 그러한 전문기업이 더욱 혁신적인가를 보려고 했으며, 여기에서 집중화는 GINI계수1)로 측정되는데 이는 제작과 배급 작품 편수로 측정된 것이다. 즉, 이러한 집중화의 측정 방법은 소수의 기업이 얼마나 많은 영화를 제작, 혹은 배급하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들은 이렇게 측정된 집중화의 정도와 전문기업의 설립을 기계적으로 연관시켜 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지 제작/배급 편수로 결정된 집중화 수치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수익이 얼마나 집중되어 있었는지, 과연 종합기업은 오늘날의 그것만큼이나 고도로 정형화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논문에서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다시피, 이 시대 자체가 이전의 단편영화 시대에 비하여 매우 혁신적인 시기였다는 점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즉, 산업 자체가 매우 젊고 새로운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제작/배급 편수를 주로 이용한 자료들을 가지고 전문기업들이 더 혁신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실제로, 연구에서 통제변수로 쓰인 density squared와 mass는 그 수치가 높아질수록 조직 간 경쟁적인 요소가 강해져서 새로운 조직의 설립과 음의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보고 있었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이는 저자들이 결론에서 다소 직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시피,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산업의 급속한 성장, 즉 그 산업 내 수적인 증가는 경쟁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보다는 legitimacy-enhancing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하며, 이 연구 또한 이 부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논의의 함의 및 적용
본 논문은 여타 산업 조직에서 주로 연구되어 왔던 조직 간 집중화와 그에 따른 경쟁, 그 과정에서 대형 조직이 관심을 두지 않는 다른 자원에 대한 전문조직의 특화라는 논의를 문화산업 영역, 즉 미국장편영화 산업의 초기의 현상에 적용하고 있다. 이는 특히 혁신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물론 암묵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대의 문화에서 혁신이라는 것은 일종의 지상과제같이 보인다. “변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변해야 한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빌자면,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변해야 한다” 정도일까―인 문화예술조직에서 기존의 문화사회학이나 예술사회학이 다루지 않았던 방식으로 혁신을 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혁신의 문제, 즉 “살아남기 위해 변해야 한다”는 명제는 집중화된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지적되어야 한다고 본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걸 그들도 안다. 특히 문화예술 산업과 같이 불확실성이 큰 시장에서는 리서치로도 알 수 없는 것이 소비자의 마음인 바, 이들 또한 혁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할 것이며 그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자원은 그러한 혁신의 실험에 매우 유리한 자원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그러한 혁신이 꼭 물적 성공은 가지고 오지 못하더라도 문화예술 조직의 정당성에 대한 웅변의 효과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일례로, 상암 및 몇몇 CGV가 인디 영화 상영관을 따로 두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 혁신을 가져오기에 유리한 자원이 무엇인가, 불리한 점은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10주 읽기에서 Caves는 대규모 문화조직이 promoting은 잘 하는데 picking up - 새로운 예술가 발굴-은 잘 못할 수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자본이 많으면 특수한 영역도 개척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요?)
집중화를 두고 생각할 때, 영화산업이 아닌 다른 문화예술 산업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측정할 수 있을까? TV의 경우 최근 외주 제작사의 제작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혁신과 어떻게 관련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연구의 경우, 혁신을 새로운 장르에 참여하는 정도로 측정하는데―물론 이 방법 또한 장편 영화가 막 시작되던 과정에서 새 장르의 출현이 오늘날과 같은 혁신의 무게를 가지는가에 대해 의문스럽지만 연구자들에게는 다른 자료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자― TV의 경우는 새로운 포맷의 도입뿐만 아니라 시청자와 기타 매체에서의 비평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TV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혁신”의 측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이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시장논리에 보다 덜 종속적인 순수예술 분야의 경우 집중화와 그에 따른 전문조직의 설립, 그리고 혁신으로 이어지는 틀이 과연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적용이 된다면 어떠한 식으로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난주에 읽었던 글에서 언급되었던 뉴욕 미술시장과 기타 지방 시장, 혹은 뉴욕이나 파리 등 몇몇 중심과 기타 세계 시장 간 헤게모니 관계는 각 지역의 미술관 조직을 일정한 군으로 묶고 서로 비교를 한다면 집중화 논의와 어느 정도 맞닿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상상력은 각자 발휘해주시길 부탁드린다). (==> 다른 주 읽기, 여기서는 미술시장과 연관시키는 것도 매우 좋군요.) 그러나 이러한 집중화와 혁신의 문제가 연결되는 방식이 본 연구와 같을까? 어쩌면, 불확실성이라는 것은 영화보다는 미술시장에서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혁신의 문제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조직 모두에게 매우 절박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 매우 흥미로운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발제자의 견해나 답, 혹은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만한 변수를 밝혀주면 좋겠습니다.)
* 분석적인 방식으로 발제문을 작성해서 매우 좋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해주기 바랍니다.
예전 숙제들을 그냥 저장해두다보니 하나하나 없어지곤해서 이제는 생각날때마다 얼음집에 하나씩 보관해두려고 한다. 선생님의 코멘트까지 그대로 있는 건 좀 쪽팔리긴 하나 게을러서 백업도 잘 못하는 주제에 이런 정도의 노력이라도 해야...-_-
그리고 나에게 과제는 잘했든 못했든간에, 그것이 내가 공부해 온 궤적이므로 소중하다. 난 그 때 이런 걸 읽었고 이런 생각들을 했었구나라는 기억들을, 보관하지 않으면 어찌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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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al Entrepreneurship in Nineteenth-Century Boston:
The Creation of an Organizational Base for High Culture in America
Paul DiMaggio
문화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이분법에 기초하여 왔다. 아도르노 등 일군의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같이 대중문화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연구자들과 대중문화를 옹호하는 연구자들 양 쪽 모두의 논의 또한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라는 것 또한―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이 강력하고 견고한 두 개의 틀에 기초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작품을 고급문화 혹은 대중문화로 규정하는 것이 art historians 등의 주장처럼 작품 고유의 질적 측면에 의해서 가능한가, 혹은 작품들의 계층적 특징을 기준으로 하여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인가?
DiMaggio는 미국에서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이 위의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인다. 그는 이와 같은 분리가 1850년대에서 1900년대에 걸친 기간에, ① 고급문화를 격리시키고 ② 격리된 고급문화를 대중문화와 차별화하며 이러한 구분을 유지하는 조직적인 형태를 구축하려는 도시 엘리트들의 노력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문화에 있어 이러한 구분은 일종의 “과정”으로, 도시 엘리트들이 고급문화에 대한 그들의 관념을 구체화시킨 문화적 제도체계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19세기의 Boston을 무대로 하여 이러한 구분의 과정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고급문화가 제도화되는 과정과 더불어 (대중문화와) 명백히 구분되는 고급문화기구의 탄생과 설립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the Boston Brahmins라고 지칭하는 이 지역의 엘리트들은 비슷한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갖추었으며 Harvard로 대표되는 학문적인 기초, 엘리트의 활발한 지역 문화모임 참여 등으로 인해 Boston은 19세기의 그 어떤 미국의 도시들보다 문화적으로 독특하고 활발한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의 Boston에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는데 이는 엘리트들의 고급예술에 대한 무관심과 이해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고급문화의 단절과 구분을 유지해 줄 수 있는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870년대 이전에 예술을 분배하는 세 가지 모델은 고급예술의 단절과 조직화에 있어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① for-profit firm 형태는 보다 많은 관객에게 접근하기 위해 장르를 혼합하고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목표에 가장 부적합했다. ② co-operative enterprise 형태는 시장 인센티브에 취약하였으며 멤버들의 완벽한 헌신을 보장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한편 ③ communal association은 각 엘리트 집단의 작은 부분을 대표할 뿐 “모두의” 목적을 대표하지 못했다. 엘리트 지위집단의 문화가 독점화되어야 하고 정당성을 얻어야 하며, 또한 신성시 되어야 한다는 이러한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각의 예술 형태에 대한 단일한 조직적 기반의 수립과 공공에 봉사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제도와 기구의 확립, 예술가와 관객 간의 충분한 사회적 거리의 확보가 필요했다.
이와 같은 작업에 가장 적합한 형태는 non-profit corporation이었으며, 조직 내의 예술적인 결정에 있어서는 전문 예술가들이나 art historian들에게 위임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비영리 법인이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 가진 다섯 가지 이점은 다음과 같다. ① 법인은 이미 경제 영역에서 엘리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된 익숙하고 성공적인 도구였고, ② 법인의 지배를 이사들trustee에게 위임함으로써 미술관이나 오케스트라 등을 시장의 압박으로부터 효과적으로 격리시킬 수 있었으며, ③ 매우 잘 통합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엘리트들에게 통제권을 부여함으로써 주 정부로부터, 혹은 다른 사회계층으로부터의 간섭을 받지 않고서 단체를 통솔할 수 있게끔 했다. 또한 ④ 이사들이 각각의 부분이 아닌, 보다 전체적인 엘리트 집단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이 고급문화의 분리와 제도화에 필요한 상당히 긴 시간동안의 안정성을 보장 받을 수 있었으며, ⑤ for-profit firm과는 달리 법인의 목표는 다양하고 갈등적인 목표들을 수용할 수 있는 , “모호함” 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왜 이러한 과정은 1870년 이후에야 가능해졌는가? 그 이전에도 상시적인 오케스트라의 설립 등 고급예술의 제도화 노력은 있어왔지만 실패하였다. 1870년 이전과 이후에 무슨 요인이 달라졌던 것일까? 우선 인구 규모와 부의 산술적인 증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성장은 기존의 안정과 엘리트들의 문화적 권위에 대한 도전을 수반하였다. 특히 급격한 이민―특히 가톨릭을 믿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증가는 남북전쟁 이후, 정치의 영역에서 Brahmins에 대한 강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공격에 대해, 기존의 엘리트들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정치영역에서의 통제권을 가질 수 없었던 대신, 지역사회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게끔 해주는 또 다른 영역, 즉 문화의 영역에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하고 그러한 구분을 유지하는 제도화와 공공 기구 설립에 힘을 쓰게 되었다.
이와 같은 노력에서 탄생한 기관이 Museum of Fine Arts(이하 MFA)와 the Boston Symphony Orchestra(이하 BSO)이다. 두 기관 모두 엘리트 출신의, 예술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춘 설립자들에 의해 추진이 되었으며, Harvard라는 학문적 단체와의 연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또한 엘리트들의 사교 클럽과 친족 간 연결 또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MFA같은 경우 초창기 설립을 위한 기부 현황에서 드러나듯이, 개별 후원의 액수가 적은 대신 후원하는 개인(혹인 집단)의 범위는 매우 넓었다. 이는 비록 사설이긴 하지만, 박문관이 외양적으로는 일종의 공공적 성격을 가진 교육적 기관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사회는 비슷한 배경과 이해를 공유하는 Brahmin 계층으로 이루어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BSO는 설립자 HIgginson의 입지가 매우 강하였으며, 매우 인상적인 단체 조직 기술을 보여준다. 많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특히 유럽 출신의)외부 음악인 고용, 고용된 연주자의 헌신을 강제하는 계약의 설립―10월부터 4월까지 주당 4회의 리허설과 공연 참석, 다른 지휘자나 음악 협회에서 연주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단 계약―을 통해 Higginson은 위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독점적인 계약 하에서 상시적인 고용 연주자를 확보하는 것, 지휘자의 권위 확립이 바로 그러한 기반의 예가 될 수 있다.
본 논문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이 심미적인 가치 그 자체, 혹은 단순히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계층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시각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그러한 구분은 사회 변동의 맥락에 근거하여 이해되어야 하는 일종의 “과정”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 엘리트들은 머리 속으로 이미 고급문화/대중문화의 구별을 확실히 하고 있는 것 같지요? 다만 그런 구별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과정에서는 내재적인 구분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급/대중문화의 구별은 엘리트들의 머리 속에서는 확연했던 반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는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또한 이를 설명함에 있어 Boston Brahmin이 공유하고 있던 유사한 배경들과 그들의 연결 관계를―비록 그들 사이의 연결을 매우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흥미로운 요인으로서 제시하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실제적인 그들의 연결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좋은 지적입니다. 연결망 현상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Higginson의 경우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더 연결망이 넓었는지 확인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좁은 동네의 경우 다른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연결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연결망에 주목할 때도 문화적 자본이나 정치적 입장 등에 의해 연결망이 형성된 점을 본다면 연결망의 형성 원인이나 과정에 대해 좋은 시사점을 줄 수 있겠습니다.)
co-operative enterprise에서 개별 연주자들의 연결 관계가 각 단체의 성격에 미쳤던 성격 또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과 틀의 유지를 설명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고, 또한 엘리트들이 참여했던 다양한 문화 관련 모임 간 연결 관계를 보는 것 또한 고급문화의 제도화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매우 좋은 idea 들입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언급한 엘리트 지위집단의 문화의 독점화, 정당화, 신성화 과정이 모두 다 잘 설명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본 논문이 고급문화의 분리와 제도와 기관 설립을 통한 독점화는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신성화 과정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 고립되어 있는 존재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거리가 고급문화를 신성시하는 시각(===> ???)을 낳게 된다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당화의 과정에서는 직관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위와 같은 과정에서 엘리트 집단의 필요와 그들이 그러한 필요성을 공유할 수 있었던 배경에 있어서는 납득할만한 근거가 제시되는 것에 비해, 왜 대중들 또한 그러한 구분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게 되었는가의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대단히 좋은 문제제기입니다. Higginson의 독단적 조치는 곧 성공을 거두는데 왜 그런지, 수용자들이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를 생각해보아야지요.). 이번 주 읽을거리 중 하나인 Shyon Baumann의 논문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DiMaggio의 논문은 대중들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견고한 경계를 정당한 것으로 수용하게 된 과정, 즉 일종의 이데올로기화 과정의 중요한 한 부분에 대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남기고 있다. (==> 좋습니다.
===> 관련된 면을 본다면, 보스톤의 엘리트들은 계급적 지위나 권력의 유지의 수단으로 그렇게 했다기보다는 유럽에서 안착된 고급예술을 신생(문화)후진국에 정착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정치의 영역에서는 교양 없고 무지한 다수들에게 패배한 그들이 문화영역에서의 헤게모니를 원한 것처럼 기술한 부분도 물론 있습니다.
* 정확하고 좋은 발제입니다.
진행 상황에 대해서도 알려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좀 더 빨리 올리려고 했는데 이 글만 쓰려고 하면 손이 자판 위에서 멈춰버리더라구요.
지난 제 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도와주시겠다고 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예상하셨다시피, 200케이스를 모으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설문조사를 하는 연구 방법은 우선 접게 되었구요.
그 이후로도 관련 주제에 관한 생각들을 계속 하다 보니 방향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되더군요.
고민만 한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라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저는 원래 주제를 명확히 보기까지는 아예 진도를 빼지 못하는 아해라서 좀 더 삽질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블로그와 slr클럽이라는 소재를 통해 공통적으로 보고자 했던 것, 즉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심이라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의 문제였고, 그것이 과연 진정한 사회자본으로서 기여할 수 있겠는가에 관한 것이라는 걸 우선 명확히 합니다.
우선, 이 지점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잠시 구체적인 연구방법에 대한 조급한 마음을 접어두고
사회자본과 신뢰의 문제에 대해 아티클과 서적 등을 통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의 관심 소재는 여전히 블로그에 더 기울고 있습니다만, 두 가지 소재 중 신뢰와 사회자본이라는 문제를 보다 더 적절히 다룰 수 있는 것을 택하려 합니다.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리고,
만약 제가 블로그를 연구하게 되어 심층 면접을 요구하게 된다면 그 때는 꼭 도와주세요!!!
심층 면접 대상자 분들께는 매우 저렴한 선물^^;;을 드리게 될 겁니다.
우선 지도 교수님께는 9월 10일까지 윤곽을 정하겠다고 제 맘대로 선언해버렸고-_-
그 때쯤 다시 이 곳에서 여러분께 제 생각들을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
아마 꽤나 긴 삽질의 여정을 보실 수 있을겝니다. ㅎㅎㅎ
그래도 제 삽질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 무엇보다 행복합니다.
이후에도 언제나 조언과 비판을 환영합니다.
부디 덜 떨어진 사회학도에게 실제적인 가르침을 내려주시길....^^
절대로 pass~ 하지 말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나다씨는 사회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고,
대강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세부분야로는 정보 사회학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할 때 제가 어렴풋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은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이 서로서로 조직화 하는 현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형체는 없지만 분명 '함께 하고 있는' 그들, 혹은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나다씨는 9월이 되면 석사 3학기가 되고 이번 방학은 논문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주제의 구체화와 함께 데이터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지요.
문헌을 읽고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제가 생각해 본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안은 작년부터 얼음집에 거주하면서 겪은 경험에 근거합니다.
저는 학부 마지막 학기 때 블로그와 커뮤니티에서의 의사소통을 주제로 허접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는데 그 때의 블로그 이용자들은 대부분 전형적인 한국형 블로그인 싸이월드 유저였답니다(물론 싸이월드가 블로그냐 아니냐에는 논란이 있으나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한국형 블로그'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어 그대로 빌어옵니다).
그 때 데이터를 돌리면서, 싸이가 아닌 이글루 같은 곳이라면 결과는 훨씬 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블로그'라는 소재를 통해 어떠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연구하는 많은 사회학자들은 '약한 연결'의 개념을 빌어옵니다. 친족이나 가까운 친구들, 동료등이 지역이나 역할 등의 유사성, 친밀함에 근거한 강한 연결관계라면 친구의 친구라든지 그냥 어찌어찌 아는 사람은 약한 연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같은 이글루 주민이라도 저와 오리언니는 이미 가지고 있던 친밀감을 기반으로 한 강한 연결을 가지고 있지만 어찌어찌 제 허접한 얼음집에 들어와 링크를 맺으며 알게 된 깨군과 저는 약한 연결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학자들은 인터넷 상의 커뮤니티나 인간관계에서 약한 연결의 개념을 잡아내고 이러한 약한 연결이 신뢰와 친밀감, 혹은 오프라인에서의 가시적인 현상들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주목해 왔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의 예상은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측면이 있어서 때때로 연구의 전제 자체가 편향되어 있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실제로 이러한 전망이 보다 구체적인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실제적인 연구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블로그에서는 아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습니다. 이글루의 링크 서비스나 네이버의 이웃 블로그 등등의 서비스에서 이러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질문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이용자들이 이러한 링크 제도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연결로부터 어떠한 종류의 사회적 지원을 얻는 걸까요?
이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링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설문지를 돌리고 심층면접을 수행하여 설문을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설문지를 보내기 위해 링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메일 주소나 집 주소가 필요할텐데 문제는 바로 이 과정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 있지요. 과연 얼마나 이메일 주소나 집주소를 얻어낼 수 있을지부터 시작해서 개인정보라는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다는 문제가 있고 실제로 이메일이나 우편을 통한 설문조사의 회수율이 어느정도가 될지, 그리고 얼마나 성실하게 응답하실지가 관건입니다. (이래서 평범한 유저들을 조사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날이 갈수록 느끼고 있습니다)
2. 두 번째는 "왜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낯선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네이버의 지식검색을 생각해보도록 하죠. 왜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질문을 읽고 거기에 답을 해주는 걸까요? 단지 내공 몇 점을 얻기 위해서? 하지만 물적으로 이용가능한 보상이 없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질문에 대해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 주는 예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제공한 도움은 즉각적인 보상으로 회수되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나도 도움을 받을 것이다"라는 기대가 있다는 점에서 네트워크상의 도움과 보상체계는 비대칭적이라 볼 수 있겠죠.
또한 네트워크에서의 이러한 도움과 보상은 공공재의 문제와 연관됩니다. 배제와 경합이 없는 공공재의 특성상 남들이 형성해 놓은 것에 적당히 편승하면서 자신은 공공재의 형성에 기여하지 않는 무임승차의 유인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인터넷 유저들은 많은 부분에 있어 무임 승차자들이지요(저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자원이 될 수 있을만한 정보들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잘못된 정보의 사회적 비용은 어떠한 식으로 측정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 역시 실제적인 사용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방법이 가장 유의미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문제의 연구대상은 이글루의 링크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slr카메라 전문 사이트인 slr클럽의 포럼과 장터를 중심으로 진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1에서 말씀드린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고, 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slr클럽에서 눈팅만 해오던 제가 과연 얼마나 이 연구에 대해 동의를 얻어내고 이메일이나 집주소를 수집할 수 있을까요? 운영자 분들께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둘 다 실제적인 유저들의 응답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만인이 이용하는 싸이월드를 대상으로 조사한다면 샘플 구하기야 식은 죽 먹기겠지만, 이미 다른 연구들이 많이 진행이 되어있는데다가 제 관심사와는 적절치 않은 주제이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일 먼저 제외했습니다. 제가 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소재는 많이 사용되는 가입형 블로그-설치형 블로그 제외-와 주제와 목적이 명확한 인터넷 사이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여쭙니다.
제가 작성한 이 글을 릴레이로 트랙백해서 메일 주소나 집주소를 얻어내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이 방법에 협조해 주실 의사가 있으신지요?
제가 a, b, c의 메일주소를 알아내고
a -> d, e, f.... b-> g, h, i.....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실제적인 논문을 진행시켜야 하므로 샘플 사이즈가 너무 작으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200 케이스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도움만을 손놓고 기다리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미친척 하고 다른 블로그 주인장에게 비공개 덧글을 남기기도 할 것이고
(실제로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글루가 아닌 다른 연구대상 사이트의 운영자에게도 연락을 취해볼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이글루 측과도 연락을 해 보아야겠죠.
저는 연구 목적으로 주소 수집에 나선다해도 법적으로 문제될 수도 있으니....
그래도 몇 분이 시초가 되어 주신다면 일은 훨씬 더 수월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쩔까요? 한 번 해볼까요, 아니면 일찌감치 냉수먹고 속차릴까요?
머리는 냉수먹고 속차려라, 석사 논문가지고 필생의 업적을 남길 생각을 하지 마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자꾸 마음이 이왕 하는 거 시작이나 해보고 깨지자...라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 저도 미치겠습니다.
주제에 남들이 해놓은 사이버 중독...등등은 하기 싫고-_- (이걸 한다면 샘플 구하는 거야 훨씬 쉽겠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해서 기왕이면 스스로 즐거울 수 있으면서 의미도 있는 논문을 쓰고 싶은데... 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모두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어지간하면 이런 짓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워낙 급하다 보니...
신랄한 의견도 좋고- 어차피 지도교수 오면 백만배쯤 더 깨질 것임- 이런 주제는 어떠냐..에 대한 의견도 환영하고... 아무튼 조언과 동정-_-, 비난 등등의 모든 발화행위를 환영하는 바입니다.
덧붙임: 어제 쓰고 나서 보니 제 연락처를 알리는 것을 잊었더군요.
혹시 문의사항 있으시면 nada615@freechal.com이나 nada615@naver.com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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