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연구원 행사로 이래저래 연이 있는 호텔 측의 VIP 상영회 표를 얻어 다녀왔다.
VIP라길래, 그리고 호텔 지배인 아저씨가 "정말 좋은 극장입니다"라고 빈정 상할정도로 강조하길래,
우리는 CGV 골드클래스 정도를 기대하고 갔건만 걍 롯데시네마 일반 상영관 하나 빌려 놓고 팝콘이랑 콜라 제공.
(아저씨, 우리 낚은 거야? 그런 거야? -_-++++++++)
고작 이 정도에 그렇게 선심쓰는 척 했다니, 살짝 기분은 상했지만 우야둥둥 간만에 머리 비우고 영화 감상.

1.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채찍질도 예전같지 않으시고, 배도 살짝 나오셨고- 포드 할아버지 절반쯤 먹은 연배에서도 그보다 훨씬 볼록한 배를 가진 사람들이 많건만, 이런 평가가 살짝 잔인하긴 하군- 뛸 때는 왠지 안습....;;;; 영화 내용을 떠나서 노년에 사서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동정심 섞인 호의를 가지게 되더군요. ^^;

 

노익장을 불태우신 해리슨 포드. 그래도 5탄을 보고싶지는 않다는......-_-;;;

2. 영화는 빨갱이가 싫어요~에서 시작해서 어설프게 매카시즘의 광풍이 살짝 비춰지는데, 영화의 이념 운운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유치한 대사와 장면이 남발함. 걍 비웃고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이 영화를 즐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크게 빵 터지는 장면은 없는데 소소하게 웃겨주는 건 있어요. ^_^

3. 영화의 흐름은 대략 반공액션 -> 그냥 액션 -> 중간중간 연애질 & 가족애 -> SF(...) -> 가족 만세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이 정도만.

4. 제 아무리 모험가에 제 멋대로 사는 아비라도 제 자식 학교 그만두는 건 눈 뜨고 못 본다.
"지식이 최고의 보물"이라는 생뚱맞은 영화의 결과와도 부합하는, 웃음 요소 다분한 장면.

되도록 남의 돈으로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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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7 10:15 2008/05/27 10:15


1. 그러니까 영화의 주제는
"너무 사랑해서 그랬답니다. 사랑하면 그러기도 해요." 내지는 "이 죽일놈의 사랑"이 되겠다.
역시 절절한 사랑만한 호러는 없지.

2. 잔인하고 메스껍다는 평에 살짝 겁먹고 갔는데, 선혈이 낭자함에도 불구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측 가능한 순간에 시간 끌지 않고 단칼에 보내버리기 때문일까. '_'
베는 부위도 대개는 목에 한정되어 있어서 깔끔-_-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예측하기 힘든 부위를 난도질하는 장면을 자세히 보여주는 식으로 관객을 괴롭히지는 않는다는 것)

3. 여전히 조니 뎁을 좋아하진 않지만(내 취향에 비추면 선이 너무 가늘어-_-) 엄청나게 섹시하다는 건 인정.
특히 스위니 토드 시절의 뎁을 보고 있자니 매 장면마다 숨이 턱 막히고 침이 꼴깍 넘어간다.
영화 초반의 행복한 벤자민 씨-_- 시절의 뎁은 사실 보면서 푸하하~~ 웃었음. 어찌나 어울리지 않는 다정함과 가증스러운 따스함이 느껴지던지, 웃지 않고 배길 도리가 없었다. 덕분에 조용했던 극장에서 혼자 미친x 됐음. -_-;

4. 팀 버튼은 여전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사랑할 테다.

5. 헬레나 언니가 과연 평범한 역할로 나올 수 있을 것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더욱 회의가 들었다. 뭐랄까, 언니는 왠지 실사같지 않아.

6. 스위니의 딸과 뱃사람 총각의 연애 행각이 시작되는 부분에는 너무 지겨워서 잤다. 따라서 그들이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뇌에 남아있지 않다. 잘 자고 깨어나니 피렐리(샤샤 바론 코헨)가 스위니를 협박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둘 나오는 장면이 영화에서 최고로 재미 없었다. 그래도 전해오는 이야기가 그렇다 하니 패스-_-

7. 나는 좋았는데 호불호가 심히 갈릴 듯한 영화라 추천은 못 하겠다.
침침한 동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내리기 전에 보시길. 보아하니 이번 주 이후에는 극장 관람이 어려울 듯.
(민족의 명절과 목을 따는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아.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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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17:46 2008/01/31 17:46
개봉 첫 주 토요일에 보고 왔다. 나는야 정재영빠~!!! >_<
거의 모든 컷에 등장하셔서 눈을 즐겁게 하시는 별님의 존재만으로도 표값을 하는 영화였는데,
시종일관 부담스럽지 않게 툭툭툭 웃겨주는 영화라 더욱 즐거웠다.



별님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따위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신 채 관객들을 사정없이 웃겨주신다.
웃는 장면이 한 세 번 나오나? 그 외에는 정말 계속 이 표정이다. ㅡㅡ;

그러나 빠순이에게 표정이 무슨 대수랴. 그저 존재하시면 되는 것을....-_ㅠ=b

영화의 원작 제목인 <노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일본 스타일의 제목이라 바뀌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얼떨결에 모의 강도 훈련에 범인으로 투입된 교통경찰 정도만(정재영)은 범인 역할을 맡은 그 순간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치밀하게 최선을 다하지만, 그가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상황은 더욱 희극적으로 흘러가게 되는 아이러니. 그래서 결국 모두가 함께 게임의 한 역할을 맡아서 어울려 노는 난장 한 마당이 연출된다.

장진 감독 영화로 오해받고 있던데, 장진 감독의 스타일이 많이 배어있긴 하지만 기존 그의 영화를 "연극적"이라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았던 관객이라도 부담없이 볼 수 있을 듯. 큰 것 한 방을 노리기 보다는 무리하지 않고 단타를 날려 착실히 점수를 쌓아가는 스타일의 영화다. 부담스럽지 않고 뒤끝이 개운하게 관객을 즐겁게 해 주었으니, 상업영화가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래.



보너스. 저 큰 머리에 무리해서 스타킹을 씌우신 우리의 별님. ㅋㅋㅋㅋ (나 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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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0 09:52 2007/10/30 09:52

"Fallig Slowly" , Glen Hansard & Marketa lrglova

음악과 영화가 따로 놀지 않는 드문 영화를 감상하는 즐거움. 계속 영화의 풍경과 음악이 머리에서 맴돌고 있다.
다음 주말에도 상영하고 있다면 커브씨를 데리고 가서 또 한 번 보리라.

음악의 감동에 젖어 헤어지는 길에 사운드트랙을 선사하셨던 몽니양께 감사.
당신이 선사한 음반을 들으며 마셨던 화이트 와인은 꽤나 달달했다오. :)
다음에는 함께 들으며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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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9 11:02 2007/10/29 11:02
<ONCE> :: 2007/10/29 11:02 stolen stories/영화

점 뺀 얼굴에 스티커를 더덕더덕-_- 붙인 채로, 공항 cgv에서 관람.
민망한 얼굴 옆에서 용케도 잘 다니시던 커브씨, 고생하셨소. ㅎㅎ

딱히 땡기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이, 왠지 <라디오 스타>랑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 애가 못되먹어서 그런지 다수가 "마음이 따뜻해져요~"라고 칭송하는 영화와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데다가, 40대 아저씨들이 동창의 죽음 앞에서 다시 밴드를 결성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왠지 뻔하게 느껴졌다. 그냥 엄마 아빠랑 추석 때 보러 가기에는 무난하겠다, 라고 생각하고 부모님과 함께 관람용-_-으로 남겨두었던 영화. 결과적으로, 외가에 내려가신 부모님 대신 남자친구와 함께 보게 되었지만.

이야기는 예상과 한 치도 다름 없이 흘러간다. 정진영 아저씨의 빙구같은 표정과 적당히 백수가 몸에 익은 40대의 후줄근함이 흐르는 곱슬머리가 귀여웠고, 내가 좋아하는 김윤석 아저씨의 은근 슬쩍 드러나는 골격-_- 감상도 좋았고, 생각보다 연기가 되고 오목조목한 얼굴을 보는 재미도 주었던 근석 군도 나름 훌륭했고, 언제나 사랑스러운 주변머리 상호 아저씨도 완소....이긴 한데, 그런데 시종일관 꿈을 향해 달려서 재기를 알리는 듯한 막판 공연으로 마무리짓는 이 이야기가 영 와닿진 않았던 거다.
이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던 건 내가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여성이라는 이유에서 상당부분 기인한다. 이 영화의 여성 캐릭터는 정말 전형적으로 현실 논리에 입각하여 남편의 꿈을 무시하는 존재다. 그런데 생각을 해 봐. 40대 가장의 삶, 힘들고 버겁겠지. 그런데 그들과 같이 사는 여자의 삶은 어떨 것 같아? 가령, 정진영 아저씨의 귀여움이 상당부분 관객을 망각하고 있게 만들고 있지만, 사실 백수 남편이 교사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이 상황에서, 내가 마누라라면 "이 자식아, 내가 보험이냐!!! 뭐든 좀 해!!!!"라고 샤우팅에 샤우팅을 거듭했을 거다. 나 하나 인생 즐겁자고 남의 인생 담보 잡아도 되는 건가 싶어 짜증이 모락모락 나는 거다.
애 학원비를 이유로 돈벌이를 닦달하는 성욱의 아내, 기러기 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하는 혁주의 아내도 이 시대의 40대 가장들이 얼마나 고단하며, 그들이 사실은 꿈을 가진 존재라는 걸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도구로밖에 사용되지 못한다. 마치 9시 뉴스에 음성 변조나 되어 나올법한 극성 엄마들의 단적인 캐릭터를 영화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9시 뉴스는 시간이나 짧지, 영화에서 이들은 너무 길게 나온다는 게 문제다.

이렇게 야금야금 씹어대면서 불편해하고 있다가도 이들의 "끝까지 노래할거야"라고 외치는 이 네 남자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들을 향해 환호를 보내며 객석을 꽉 채운 이들의 표정을 잡은 신을 보고 있자니 이러한 판타지에 태클을 거는 일 따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웃었다. 유명 가수 콘서트에도 유료 관객 모으기가 쉽지 않은 요즘, 20년만에 밴드 재결성한 아저씨들이- 물론 꽃소년 보컬이 있긴 하지만- 인디신에서 화르륵~ 인기를 얻어 적어도 노브레인 부럽지 않은 관객들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판타지 아니겠어? 모든 영화가 꼭 현실을 정확히 집어낼 필요도 없고, 희망을 보고픈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뭐. 이 영화에서처럼 귀여운 40대 아저씨들의 판타지라면 더더욱. 결국 환상에 현실 논리 들이대는 인간이 쓸데없이 진지하고 싱거워지고 머쓱해지는 꼴. 두 시간 여의 판타지를 즐길 수 없다면 입 닥치고 잠이나 자자, 라고 벌써 늙어버린 듯한-_- 스스로를 잠시 혼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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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4 00:24 2007/09/2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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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인물들이 하나같이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관계로 혼자 보고 왔다.
현재 네티즌들의 응원에 힘입어 소수의 극장에서 장기 상영 돌입.
내리기 전에 보고 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장화, 홍련> 이후 한국 공포 영화 중 최고다.

영화 속 3편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는 것은 결국 사랑. 사랑이 깊어 죄책감과 집착, 그리고 공포라는 병을 낳는다. 사실 사랑이라는 게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호러의 싹을 가지고 있는 바, 사랑이라는 이름의 공포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의 한 장면을 불현듯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하는 여자가 과거 애인이 살았던 집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뜻하지 않게 받은 답장을 현재의 작업남(?)에게 보여 주며 웃는 장면은 적어도 나에게는 호러였다. 이봐, 당신의 애인은 3년 전에 죽었어. 유령이라도 상관 없다는 그 표정은 뭐냐고!!!라고 소리치고픈 장면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러브레터>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아는 여자>에서의 실연 당한 여자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 "너무 사랑해서 그랬답니다. 사랑하면 그러기도 해요."라는 극 중 형사의 말은 곱씹을수록 묘하게 섬뜩한 구석이 있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만 못 이루면 다행일 텐데, 감정이 깊어갈수록 죽고 싶고 죽이고 싶게까지 만드는, 이 죽일 놈의 사랑.
<기담>의 3개 에피소드를 이루는 인물들 또한 사랑이 병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며, 영화는 이것이 빚는 공포를 적절히 드러내고 감추어 보여준다. 귀신의 등장 등 보여주는 장면으로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에도 성공적인 영화지만(적어도 이제는 너무너무 식상한 귀신들의 구체관절 댄스를 이 영화에서는 보지 않아도 된다),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안생병원의 어두운 복도는 별 다른 설정없이 보이지 않음으로 인한 두려움을 더욱 자극시킨다. 정말 깜짝깜짝 비명을 지르게 할 만한 장면을 꽤나 포함시키면서도 이 영화가 촌스러워지지 않은 이유는 공간이 가지는 특유의 성격과 어둠을 제대로 살린 연출의 덕일 것이다.

꼭 호러라는 장르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인상적인 영화.
추천한다. 막 내리기 전에 보세요. 현재 서울극장, 스폰지하우스, cgv 공항과 상암 등에서 상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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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5 22:12 2007/08/2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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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회는 그녀의 고통을 읽지 못할까 : 영화 <밀양>에 대한 김진호 목사의 비평

Film 2.0 6월 13일에 온라인 게재된 위 글에 공감한다. 평소 나는 신이 너무 쉽게 용서에 동원된다는 생각을 해 왔으며, 그래서 <밀양>을 보며 용서라는 것을 어떻게 입에 담을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위에 링크한 김진호 목사의 비평은 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깔끔히 글로 담아내었다. 특히 기독교의 용서에 대한 다음의 인용 부분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전략)… 기독교는 역사 앞의 죄책을 신 앞에서 사죄하는 습성을 제도화했다. 그것은 사람에게 용서를 비는 과정이 생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 앞의 사죄는 주로 의전(儀典)을 통해 수행된다. 의전은 미리 약속된 방식으로 소통을 조직하는 양식이다. 그러므로 의전 당사자는 약속된 방식으로만 행동하도록 강요된다. 의전 속에서, 인간은 신 앞에 속죄를 표현하고 신은 사면하는 식으로 대화한다. 신 앞에 속죄하지 않는 존재가 신자일 수 없듯이, 사면하지 않는 신도 신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사면을 제도화했다. 피해자의 분노를 거칠 필요도 없고, 그러한 감정소비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도들에게 속죄는 손쉬운 행동이며, 피해 당사자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행위를 수반할 필요가 없다. 단지 신을 위한 충성을 의전 속에서 보이기만 하면 속죄는 실체화되는 것이다.

기독교도들의 속죄는 이렇게 커피 한 잔과 같다. 어느 차보다도 손쉽게 먹을 수 있고, 어느 차보다도 자극적인, 그런 식의 가벼운 속죄 감각이다. 한데 이는 교양 있는 시민사회의 속성과 잘 부합된다. 과거 국가는 범죄에 대해 야만적인 처벌을 제도화했다. 반면 시민사회는 그러한 야만성을 제거한, 교양 있는 사회를 구축했다. 기독교는 이러한 점에서 시민사회의 교양을 가장 체계적이고 손쉬운 것으로 상품화한 장본인이다. 하여 속죄한 범죄자는 처절한 죄책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시민사회의 교양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사면 행위를 조직화하도록 유도된다.

한데 <밀양>의 신애는 이러한 신의 용서에 항의한다. 내가 용서하기 전에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할 수 있느냐고. 이는 교양 있는 시민사회가 제도화한 상투적 속죄 체계에 대한 이의이기도 하다. 사회적 죄에 대한 야만적 처벌을 최소화하고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이룩하려는 시민사회적 교양이 상처받은 이, 그 상처를 손쉽게 다른 것으로 치환하지 못하는, 하여 몸과 정신이 훼손된 이들과의 대화를 생략한 채 구축한 사면제도에 대한 저항이다. 교양 있는 시민사회적 제도의 은폐된 영역, 폭력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사회적 처리의 미학에 치중했던 속죄의 제도화에 대한 항거인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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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8 13:36 2007/06/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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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매진사태를 겪은 후, 결국 금요일 퇴근길에 보고 왔다.

1.

어제 전도연의 수상으로 칸 올림픽-칸을 다루는 국내 언론의 태도를 보면 이게 영화제라기보다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대회이지 싶다- 특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분명 칸이 아니었다면 "이거 뭐야? 결론은 왜 안 나? 왜 이렇게 우울해?" 등등의 혹평을 받으며 몇 주 되지 않아 극장에서 조용히 내렸을 것이라 확신한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상영관을 잠식하는 요즘같은 시즌에는 더더욱 될 법한 영화가 아니다. 실제로 내가 관람한 cgv 목동 상영관에서는 관람 중 아주머니 일당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고-아마도 기독교인이었을까?- 영화가 끝난 후 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이거 예술영화였어?" 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낚였다"는 거다. 이것 보세요, 이 영화는 전도연과 송강호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창동"의 영화라구요. 물론 전도연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녀는 울음소리로 마음이 타는 냄새를 전달하는 놀라운 경지를 보여주지만, 영화는 무엇보다도 감독의 예술. 이창동, 정말 지독하다. 잠시 현장에서 물러나 계시는동안 더욱 지독해지신 것 같다.

2.

나는 가끔 신이 너무 쉽게 용서에 동원된다고 생각해왔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네 원수를 사랑하라" 내지는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 등등의 구절을 자주 인용하면서 용서에 대해 매우 강하게 가르치는 종교다. 하지만 이와 같은 예수의 가르침을 빌어 쉽게 내뱉어진 용서는 결국 "이미 나는 용서를 말했고, 다시는 이 일을 기억하여 마음을 다치지 않으리라"하는 식으로 상황에 대한 회피와 연결된다. 신애가 자신의 아들을 유괴한 범인을 찾아가 대면하는 장면은 때로 신의 이름으로 용서를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알량한 일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무슨 권리로 신이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신애가 느끼는 배신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고, 그 이후로 영화는 신애가 자기가 용서하지 않은 사람을 용서해버린 하늘에 대해 반항하고 울부짖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이 쪽도 고통스럽긴 매한가지이지만, "나는 행복하다" 되뇌이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말하는 그녀를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3.

이 영화에서 송강호가 맡은 종찬이라는 배역이 없었다면, 나는 관람 도중 극장에서 질식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사방을 꽉꽉 틀어막아 관객이 도망칠 어느 한 틈도 주지 않는 이 영화에 산소를 불어넣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비록 신애는 그를 "속물"이라 부르고 가끔 지나친 오지랖을 펼치긴 하지만, 그녀의 곁을 항상 뱅뱅 맴돌면서 제정신을 놓은 그녀에게 벌컥 소리를 지르고 상을 엎는 유일한 인물이 종찬이다. 영화에서 관객들이 웃는 지점은 죄다 종찬의 신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건 종찬 역이 특별히 코믹해서라기보다는 종찬을 구현해 낸 송강호의 연기가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송강호는 이제 모든 관객에게 소중한 배우가 되었구나 싶다. 그는 정말 우리 시대의 배우다.

4.

내가 내 머리를 싹둑싹둑 잘라내고 싶은 순간이 있을 때 종찬처럼 말없이 거울을 들어주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말하는 비밀의 볕을 쬐는 순간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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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9 09:56 2007/05/2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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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언니의 감상문을 업어왔다.
생각할 때마다 열이 솟구쳐 오르는 영화라 도저히 감상문을 쓸 수 없으니,
궁금하다면 나의 울화를 대신 분노의 포스팅으로 승화시켜주신 오리언니의 글을 읽어보도록.

어제 아리땁고 명랑하신 오리언니와 함께 <우아한 세계>를 보고 왔다.
언니와의 만남은 항상 즐겁지만, 영화는 간만에 사람을 머리 끝까지 돌게 하는 종류의 영화였고... -_-;
영화가 끝나고 나서 둘 다 초흥분모드였음만 밝힌다.

아, 영화 자체가 후져서 열받은 건 아님. 잘 만든 영화였다. 너무 잘 만들어서 열받는 영화였다.
영화 감상을 남겨보고자 블로그 창을 열고 다시 내용에 대해 상기하기 시작하니 다시 복장이 터져서 또 흥분 상태에 돌입. 이 상태로 감상을 썼다가는 완전 욕지거리로 난무하는 포스팅이 될 것 같아, 본 블로그의 건전하고 지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감상문은 유보하겠다. 무엇보다 월급 받으면서 일은 해야 하니까, 감상을 쓰기 시작했다간 오늘 하루 업무 마비될 듯. -_-++  

참으로 징글징글한 주제를 징글징글하게 밀어붙인 한재림 개싸이코!! (긍정+부정적 의미로.. -_-)

영화 보는 내내 뒤통수 + 너른 등을 갈겨주고 싶게 만들었던,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 징그러운 송강호 본좌....orz
송강호에 대해서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그냥 천재시다.
그런데 제발 나같이 평범하고 일상이 안온한 팬을 위해서 좀 쉬어가주는 영화를 해 주셨으면..ㅡㅜ 맡은 역할마다 온몸이 반응하게 만드시니 이거 원... 다음은 이창동의 <밀양>, 그 다음은 김지운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 다음은 박찬욱의 <박쥐>........orz



"웃어라, 아버지니까"라니, 이런 엿 같은-결국 욕해버리고 말았다- 카피.
계속 웃으니까 당신을 졸로 보는 거잖아!!!!! 이 새끼야, 그냥 돈 끊고 널 위해 살아!!!!!!라고 영화 보는 내내 소리치고 싶었다.



이렇게 평범한 풍경이 얼마나 엽기적인 토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쉬지 않고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미덕-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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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5 09:49 2007/04/25 09:49

눈부시게 노란 수선화밭과 그보다 더 눈부신 이완 맥그리거의 미소.
그것이 <Big Fish>를 아직까지도 좋은 영화였다고 기억하고 있는 이유다.



저 노란 수선화가 보라색 제비꽃이었다면 아마 극장에서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에는 노란 수선화가 훨씬 더 어울려.

동화같은 에피소드의 연속인 이 영화를 보면서 난 참 즐겁고 행복했었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저 장면과 그 외에도 종종 등장하시는 이완의 장난스럽고 천진한 미소가 화면 가득 잡힐 때면 너무 좋아서 녹아버리곤 했다. 저 미소에 심지어 성이 Bloom이라니, 정말 제대로 된 캐스팅 및 작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감탄했었고, 영화가 끝나고 집에 올 때는 큰 물고기의 등이 만들어 준 징검다리를 사뿐사뿐 딛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영원한 내 소년, 이완.

나는 이렇게 좋았었는데, 얌전한 팀 버튼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이전의 팀 버튼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꽤나 컸던 듯. 이럴 때면 언제나 그렇듯 "팀 버튼은 변했어."라는 단정도 나오기 마련이다. 팀 버튼 뿐이겠어, 모든 아티스트들은 항상 비슷한 딜레마를 안고 산다. 기존 스타일을 고수하면 "발전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다른 것을 시도하는 경우에는 "브루투스, 너마저"가 되는 형국. 이런 사람들에게 여러 아티스트의 팬질을 상당기간 해 온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변한 게 아니에요. 그것도 그 사람이에요."

물론 알고 있다. 그 사람의 작품을 열심히 사랑했으니까, 그리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기존의 것과 다른 모습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아마 나는 그들만큼 팀 버튼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는 않았으니까 이렇게 쿨한 척 말할 수 있다는 것도. 그 대상이 정재영이나 장진이나 송강호나 김지운이라면, 아마 내 마음도 그러하리라. 하지만 팬질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랑과 이해 또한 달라져야 함이다. "xx의 작품세계 계보"따위를 읊는 것은 늦어도 십대 후반에는 졸업해야 하는 법. 나의 별님도 오만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 품은 마음이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와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있다. 아티스트들은 그걸 자기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이쯤 되면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내 별님에게 매우 인간적인 애정을 품게 된다. 그래서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 내심 당황하면서도, 그의 변질을 이야기하는 자들에게는 그 쉬운 혀 끝 놀림에 대해 화를 내고 변호하게 되는 것이다. 안다, 중증이라는 걸. -_-;

아무튼, 쉽게 변질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거다. 팀 버튼이라고 해서 착한 영화 만들지 말란 법 있나? 누구나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권리는 있지만, 그것에 대해 변질 운운하며 그 사람이 원하지도 않는 절대성 따위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아티스트의 다른 가능성을 막는 길임과 동시에, 그에게서 또 다른 것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를 당신의 눈과 마음을 가리는 길이기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물에 들어가는 노년의 에드워드 블룸과, 그런 그를 이해하는 아내.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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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01:10 2006/11/07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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