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적으려 글쓰기 창을 띄워놓고서는 멍하니 하얀 바탕만 쳐다보고 있었다. 일로서의 글쓰기도 그렇고 생활에서의 자기 기록도 그러하다. 기껏 몇 줄을 쓰다 지우고 또 쓰고 또 지우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일은 된통 혼나면 하게 되겠지만 정작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나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못하면서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조차 주저한다. 이럴 때마다 입술은 계속 바짝바짝 마르고 속이 타들어간다.
내가 말하기를 주저하는 것은 듣지 않는 그들의 탓이 아니다. 무심한 척 상냥한 그들은 언제나 성실히 들어주고 고맙게도 더 민폐를 끼쳐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나를 스스로 검열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게 그냥 발현하는 감정인지, 아니면 내가 자꾸 이 감정을 되살려내고 부풀려내는 것인지 나 스스로도 헷갈린다. 그래서 내가 내 감정을 말하는 순간 그게 떠오르는 감정 그대로의 기록이 아니라, 고통과 자기 연민을 은연 중에 즐기면서 감정을 재생산하고 부풀려내는 것이 아닐까 싶어 두렵다. 타들어간다는 느낌이 이토록 생생한 지금을 혼자 견디는 것보다도 감정에 취하는 게 더 두려워, 나는 들어주겠다는 그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에게도 말걸기를 두려워한다.
시간이 날아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어라도 가고 있구나 싶어 희망을 가지다가도 카운터 펀치 한 방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이 지루한 반복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젠장.
그래도 이제는 그 주기가 차츰 길어지고 있으니까, 빠졌던 나사들도 하나 둘씩 제 자리에 돌아오는 것 같으니까 언젠가는 스스로 감정을 만들고 부풀려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게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때는 이런 내 모습을 미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진심으로 토닥여줄 수 있으려니, 허약하기 짝이 없는 희망을 품는다. 이 글조차 과장된 내 모습을 보이는 부끄러운 기록같지만 언젠가는 이 글조차 귀여워지는 날이 있기를. 희망의 증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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