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지 6개월이 지났고, 딱 한 해의 중간 즈음 입사를 했으니 이렇게 2009년을 보내고 있다.
적응이라는 게 되었다면 되었을, 그런 시기.

적응이 어떤 면에서 된 것도 같은데, 영원히 적응하지 못할 부분이 여기 있고, 그 부분이 나에게는 너무 크다.

보여지는 나와 보고 있는 나, 타인에 대한 나와 나 스스로 평가하는 나라는 거친 이분법을 써 보면,
전자가 너무 지나칠 경우 그 사람은 지독히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될 테고
후자가 너무 지나칠 경우에는 과도한 자기애를 가진 소아병 환자가 될 테다.

영원히 소아병 환자로 놀림받아도 상관 없다. 나는 절대적으로 후자의 "나"라는 게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산다. 아니,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부서 워크샵이 있었고, 각자 2009년의 반성과 2010년의 계획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이직 외에 달리 계획이 없던 나는 그냥 뻔한 말들을 쓰고 넘겼는데, 우리 부서에서 똘똘하니 일 잘 하는-그래서 독박도 많이 쓰는- 나랑 동갑인 애아빠 김대리가 "2009년에 여전히 나빴던 점은 작년과 같이 올해도 일을 하면서도 내가 뭘 하는지, 앞으로 내가 뭐가 될지 모르겠다는 거"라고 발표했다. 상무님과 부장님이 다 앉아있는 자리에서 이런 발표라니, 이것만 해도 오오 김대리님 멋져요~였는데, 2010년 자신의 계획 및 그 계획에 대한 점수 산출법까지 구체적으로 발표한 김대리의 충격발표가 뒤따랐다. "만약 이 목표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60점 밑이 나온다면, 전 6월에 회사를 그만 두겠습니다." 이미 아내분과도 이야기는 다 끝내셨다고.

그런 김대리에게 상무님은 "자기가 왜 이런 생활을 계속하나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나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찾는 클라이언트가 있어서"라며, 김대리도 계속 일하다 보면 그런 보람으로 버티지 않겠냐 하셨지만, 이미 내 보기에는 똘똘한 김대리를 찾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게다가 인간의 만족이란 타인에 대한 평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터. 이 점에서 상무님은 핀트를 완전 잘못 잡으셨다.
부장님은 "다른 거 없다. 직장인이 일 하고 돈 많이 벌면 되는 거"라고 했지만, 지금 부장님만큼 벌려면 김대리가 버텨야 할 시간이 얼마인데, 그 시간에 대해서는 무엇으로 보상할 거임? 무엇보다 애아빠인 김대리와 애엄마인 그의 와이프가 돈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음에도 그러한 결정을 내리고, 지지한다는 것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시라 권하고 싶었다만, 글쎄, 통하지 않을 이야기는 안 하는 것도 방법이지.

실제로 6월에 되어 김대리가 목표를 달성해서 회사를 계속 다닐지, 아니면 다니지 않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랑 비슷한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라는 데에서 위안이 좀 되었다.
그리고 애아빠도 저렇게 선언하는데, 하다 못해 애도 안 딸리고 부양 가족도 없는 나는 더 늦기 전에 좀 더 막 살기로 했다.

그래서 적어도 1년은 버티고자 했던 직장, 그냥 미리 맘 접고 지금부터 다시 구직 시작.
긁어놓은 카드값은 감당해야 하니까 당장 때려치우고 어찌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울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현실적으로 돈은 좀 덜 벌겠지만, 덜 쓰거나 덜 모으면 되는 거라고 편히 생각하자.

여기 다 못 쓴 이야기가 풀어놓으면 1주일치는 되니까, 그건 나중에 천천히 만나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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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2 22:14 2009/12/2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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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adooki  2009/12/23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hanks to 김대리님..."
  2. Dr. Chung  2009/12/24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절한 소아병은 이 세상 살아갈 힘과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매우 긍정적 기능을 가졌다고 생각. 그러니 괜찮아요.
    토닥토닥.

    나중 천천히 만나서 합시다..가 참 맘에 들어요. +_+
    • 나다  2010/01/18 2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천천히...가 곧..으로 변할 날을 기대해 보아요.
      (2....2월에는...;;;;;)
  3. miracool  2009/12/25 1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소리부터 질러봅시다. 따라하세요. "꼬라~지 하고는!!"

    그건, 막 사는 게 아녜요. 잘 살고 싶어서 환장하는 거지. ^^
    하다못해 애 놓고 부모된 몸이라도
    하고 싶은 거 (살인, 방화, 약탈 등등이 아니라면) 하면서 살고도
    먹고 살 수 있어야죠. 그게 제대로 된 세상이죠. ㅎ

    파이팅하는 겁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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