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흥분의 드라마가 가득했던 올림픽 야구의 열기를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즐기고 환호하면서도 가슴 한 켠은 안타깝고 답답했다. 이처럼 멋진 승리를 가져다 준 저 멋진 선수들 중 우리 팀 선수는 달랑 봉타나 한 명. 그것도 전반기 시즌 막판의 구위 저하가 채 회복되지 않은 모습의 팀 에이스가 대표팀 마운드에서 흔들흔들~하는 걸 보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더불어, 대표팀 선수들의 멋진 활약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드는 생각 "우리 팀이 저런 애들이랑 싸워 왔구나. 그리고 돌아가면 또 적으로 쟤들을 만나야 하네?"라는 데서 오는 답답함이란.
......................... 그래도 나는 어쩔 수 없는 엘지빠인가보다.
시즌이 중단되었던 기간 내내, 그 웬수같은 것들이 그렇게 보고 싶더라. -_-
그래서 리그가 재개되는 8월 26일, 기아와의 3연전을 손꼽아 기다렸다.
1.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2008년 시즌, 경기가 우천 취소되는 날 SK 팬들은 "우리 애들 훈련하겠군"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고,
롯데 팬들은 "아놔, 분위기 좋았는데 이 놈의 정지훈이 흐름 끊어먹누만" 원망을 할 거다.
그리고 대다수의 다른팀 팬들은 "경기를 못 보는 건 아쉽지만 우리 애들도 좀 쉬어야지"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엘지팬들은 이런 상황을 걱정한다.
"이것들 경기 없다고 신나서 나이트간 거 아냐? 걸리기만 해 봐라...#@^$%^&%#^&^$&"
물론 다 큰 어른들이, 프로선수가 성적이 좋다면야 나이트에 가서 부킹을 하든 클럽에서 밤새 몸을 흔들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만.... 엘지팬들은 "우리 애들이 정말 열심히 하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맘 한구석에 담고 산다. 이건 "생긴 거 하나 반지르르하니 뺀질거리는 놈"으로 대표되는 엘지의 이미지와도 관계가 있는데, 팀이 잘 나갈때야 이런 비아냥이 덜 생기고 야구 못하는 것들의 열폭 쯤으로 흘려 듣게 되지만, 몇 년째 장기적인 부진을 겪고 있다보니 팬들마저 이런 이미지가 사실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심수창과 이대형 등, 가히 한국야구의 얼굴들(...)이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부진함으로써 답 안 나오는 팀 상황에 톡톡히 기여할 때, 이같은 의심은 반쯤 확신으로 바뀌게 된다.
올림픽 휴식기간 후 돌아온 선수들은 죄다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해변이나 야외 수영장에서 골고루 잘 태운 까만색이 아니라, 밖에서 땀흘리다 대충 얼굴에 물 끼얹고 다시 땀흘리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법한 얼룩덜룩한 까만 피부. 그런 얼굴들을 보니 그동안 신나게 욕했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가출하고 말썽만 피우던 아들 정신 차리게 하겠다며 해병대 캠프 보냈던 엄마가 돌아온 아들의 벗겨진 피부를 보며 안쓰러워하는 그런 심정이 되어 이번 3연전만큼은 얘들이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하리라는 마음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다행히 이런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수비에서의 연이은 허슬플레이는 엘지빠의 신앙 및 "내년에는 잘 하지 않을까"라는 설레발을 더욱 공고히 했다.
물론 득점 찬스에서의 적시 병살타-_- 및 1경기 1에러 신공, 구구단마냥 변하지 않는 라인업 등 엘지 야구임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 까만 얼굴들이 뭔가 애쓰고 있다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늬들도 프론데, 나보다 훨씬 야구를 진지하게 대할 사람들인데, 의심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야구에 대한 당신들의 진심만큼은 의심하지 않을게. 정말 미안해.
(무슨 짓을 해도 용서했냐고? 그럴리가 있나... 첫 경기부터 신나게 깠다-_-)
2. 잘생긴 야구 선수의 애환(부제: 수창군, 당신한테는 특히 더 미안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여자가 야구팬이라는 것에 대해 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게 현실.
규칙은 알고 보냐는 둥, 선수 얼굴만 보고 쫓아다니는 거 아니냐는 둥의 오해야 귀여운 수준이긴 한데....
엘지를 응원하는 여성팬의 경우 특히 이같은 오해와 비아냥에 시달릴 가능성이 급증한다는 거다.
단지 선수 얼굴만 보고 견디기에는, 야구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경기 시간도 길고, 규칙도 복잡하며 타자의 경우 돌아가면서 나오니까 볼 수 있는 시간도 짧다. 잘생긴 선수가 불펜투수라면 언제 나올런지도 알 수가 없다. 이런 여건에서 얼굴만 보며 팬질하기 쉽겠나? 일반적인 여성 야구팬도 다르지 않다. 야구 선수는 야구를 잘 해야 예쁜 거다.
이러한 이유로, 심수창은 참 많이 까였다. 2006년 10승이 뽀록이네, 거만하네, 선발 안 시켜줘서 태업하네 등등.... 무엇보다도 "얼굴만 잘생기면 뭐해, 야구를 못 하는데"라는 비아냥까지.... 심군을 응원하는 여성팬은 죄다 빠순이 신세를 면하기 힘들었다. 강도는 좀 덜하지만 이건 이대형 팬들도 마찬가지.
전반기 막판에 좀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심수창의 2차전 선발 등판 결과에 대해 크게 기대하진 않았었다. 5이닝을 3실점 정도로만 막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가자마자 야구를 틀어보니 이게 왠일? 무려 2안타 무실점의 호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상대의 잘 맞은 타구를 수비들이 척척 잘 잡아준 덕도 크지만 변화구 각도가 꽤 좋아진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이 날은 올해 최다이닝인 7이닝을 소화했으니, 칭찬에 칭찬을 거듭해도 모자랐다.
경기 후 히어로 인터뷰에서 스브스 리포터가 "심수창 선수 정말 잘 생기셨는데(... 왜 아니겠냐. 리포터 눈이 그냥 초롱초롱해지드만-_-+++) 그 동안 부진해서 맘 고생 심하셨겠어요"라고 말했더니, 까맣게 그을려도 잘생긴-_- 심군이 이렇게 답했다. "정말 열심히 하는데, 부진하니까 사람들이 제가 놀아서 그런다고 오해를 해서.... 열심히 하는데 논다고 오해를 하니까 좀 속상했다"라고.
......................... 심군, 미안........................ㅠㅠ ㅠㅠ ㅠㅠ ㅠㅠ ㅠㅠ ㅠㅠ
"얼굴만 메이저리그"라고 이제는 안 깔게.....ㅠㅠ
훈련 열심히 한 티, 당신도 팍팍 나드라. 얼굴도 새까매지고. 이닝 많이 먹어준 게 제일 고마워.
그런데.... 당신 시즌 막바지 인터뷰 할 때 "러닝이랑 웨이트 열심히 해서 구속 올리겠다"고 약속했잖아?
당신 나이에 최고구속 141은 좀 그렇지? 왜 사자팀 상목 형님 병호 형님 흉내를 내고 그르냐-_-
각설하고, 엘지 투수조는 시즌 끝나면 봉타나 옆에 촥 붙어서 웨이트랑 러닝에 힘쓰는 거다. 토나올 때까지.
3. 빛나는 수비, 그런데 우리 경수는?
훈련을 진짜 열심히 하긴 했는지 엘지답지 않은 허슬 플레이, 수비 시프트 성공이 빛났다.
사실 이번 3연전은 엘지랑 기아가 누가누가 더 못 하나 시합을 하는 것 같았지만-_-
그래도 위닝 시리즈로 가져올 수 있었던 건 결국 수비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찜찜한 건 우리 경수의 포지션.
2루수로서 멋진 호수비를 보여주긴 했지만 경수를 붙박이 유격수로 좀 키워봤으면 한다.
내년에는 지환이도 들어오고 하니까... 박경수-오지환 키스톤 콤비는 상상만으로도 배부르구나+_+
4. 여전한 공격 중 한 가닥 희망
잔루 신공, 병살 신공은 여전했다. 2차전에서 4회 연속 병살타(...)를 치고도 이긴 게 기적이다.
쉬고난 후 확실히 상태가 좋아진 투수진과 훈련의 성과가 좀 있는 것도 같은 수비와는 달리
타격은 참..... 갑갑하구나.
그래도 이번 시리즈를 보니 곤조가 좀 좋아진 것 같다.
중심이 좀 안정적으로 잡히고 맞추는 데 집중하는 듯.
똑딱이가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일단 잘 맞기만 한다면야 힘이야 워낙 진퉁이니 넘기는 건 일도 아냐.
게다가 우리는 그 똑딱이가 아쉬운 8위 팀이 아닌가-_-
물론 수비에서 또 실책을 해 주시길 했지만.....ㅡㅡ;;; 그래도 뭔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다행.
우리가 곤조에게 또 속는건가 싶지만, 그래도 내년까지는 속아보려고.
엘지 야구는 서른부터니까. 이러다 곤조 내년에 터지면 잠실에 생일 축하 플랭카드라도 걸어야 할 듯-_-;;
5. 무조건 이쁘다 우리 범준이
3연전 마지막 경기는 기아 석민이의 "나는 에이스다" 다큐멘터리나 진배없었다.
"나는 기아의 에이스이자 금메달리스트"라고 시위하듯 여느 때보다 더 무자비한 공을 뿌리던 석민이와,
힘없이 농락당하던 엘지의 타자들의 모습은 참 대조적이었지.
컨디션 점검 차였는지, 토욜 두산전 선발이 예상되던 범준이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최고 151까지 퍽퍽 찍는 직구를 보니 속이 다 시원.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너같은 놈을 기다려 왔더냐.
다섯 타자 잘 잡고 내려갔다. 안타 안 맞은 것도 좋지만, 휴식 기간동안 힘이 붙은 것 같아보여서 더욱 좋았다.
사실 나는 범준이를 편애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선수라도 못하면 가차 없는데 그냥 얘가 하는 짓은 다 예쁘다.
"찬헌이 형종이보다 계약금 조금 받고 들어왔지만 나중에는 내가 더 연봉 많이 받을 거"라고 했을 때부터
이 자식의 배포가 맘에 들어서 크흐흐 웃었고,
"길고 가늘게 선수 생활하고 싶어요"라는 인터뷰를 보면서 "얘 신인 맞아? 뭐 이래?"하며 뜨아했지만
하는 걸 보니 정말 길고 오래, 꽤 괜찮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된다.
남들이 뭐라든, 마이웨이, 하고 싶은대로 할 거라는 깡이 보여서 나는 얘가 너무너무 좋다.
(.................. 덧붙여, 생긴 것도 딱 엘지스러워. 어쩌면 좋니.....+_+)
엄하게 구종 늘린다고 이것저것 굴리지 말고 있는 걸 잘 가다듬도록 기다려주었으면 한다.
어차피 꼴지, 그동안 이만큼 망가져 온 팀이니 몇 년 힘들 각오는 해야지.
딱 막내같이 생겼지만 오기도 있는 놈이라 딴 짓 안 하고 열심히 할 것 같다. 제발 클 때까지 기다려주자!!
6. 번외 : 기아 윤석민
이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들이야 나의 윤석민 사랑을 잘 아시겠지만.....
나는 얘가 등판하면 지나치게 감정 이입한다.
볼넷, 안타, 힛바이피치볼 등등...1루에 나갈 상황을 전혀 만들지 않으며 7회 2사까지 달렸던 석민군의 퍼펙트 게임은 안치용의 평범한 플라이를 우익수가 놓치며 기록상 안타(...)가 되는 걸로 끝이 났다. 게다가 그 볼을 놓친 야수는 다름 아닌 크보의 살아있는 레전드 이종범 선수. 그 순간 나는 우리팀이 퍼펙트 게임의 상대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보다는 대기록에 다가갈 기회를 어이없이 놓친 석민이와 고개를 못 드시던 종범선수에게 이입해버렸다.
이닝은 석민이가 페타지니를 삼진 잡고 씩 웃는 걸로 마무리(정말 대인배다, 이 녀석은). 인터뷰 때도 퍼펙트를 놓친 아쉬움보다는 "이종범 선배님이 옆구리 부상인 것 같은데 빨리 나아서 게임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말하는 녀석.
지난 시련동안 넌 정말 득도했구나. 이제 스물 셋 녀석이 이러면 되는 거니? 응? 왜 타팀빠까지 너에게 반하게 만드는거니? 넌 우리랑 같은 종족 아니지? 인간이 화도 내고 적당히 철도 없고 그래야지 왜 이러니? 엉엉, 이 자식아, 정말 사랑하지만 널 향후 몇 년 간 타팀 에이스로 보는 건 너무 잔인해!!!! 그러니 FA 풀리면 엘지로...(응?)
메트로가 더 밝게 나왔으나,
심군이 더 빛나보인다는-0-
에이스 심수창...? -_-
엘지 여팬 자질이 충분하다. 유지현 코치님-_- 좋아했다며? ㅋㅋ